화요일 오전 9시 49분, 충정로역에 내렸다. 오늘의 목적지는 손기정 문화도서관이다. 손기정 문화도서관은 손기정체육공원 안에 있다. 손기정체육공원에 가기 위해서는 2호선과 5호선이 지나는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나가서 좀 걸어야 했다.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나가 정면에 보이는 첫 번째 골목으로 살짝 들어가면, 손기정 선수가 그려진 벽화가 보인다. 이곳이 ‘중림동 손기정 둘레길’ 입구다. 벽화를 따라 손기정 둘레길을 걸으면 손기정문화공원 내 손기정기념관을 찍고 서울 보건 고등학교를 지나 다시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돌아올 수 있다. 나의 목적지인 손기정 문화도서관도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온다.
손기정 둘레길 l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
손기정 둘레길은 언덕이 포함되어 있다. 경사도가 심하진 않아서 걸을만했다. 지나가는 주택가 곳곳에 손기정 선수와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있어 그림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둘레길의 코스인 봉래 초등학교로 연결된 계단에는 손기정 일대기가 그려져있다. 손 선수가 신었던 신발, 메달, 사인과 태극기 등이다. “인생은 반환점이 없는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적힌 문구도 있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된다. 봉래 초등학교 입구를 지나 조금 내려가면 손기정 체육공원 방향 표식이 나온다. 표식을 지나자마자 체육공원이 내려다보인다. 체육공원을 향해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체육공원 가운데에 축구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달리기 전용 트랙이 마련되어 있다.
계단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실버체육센터와 러닝센터가 있고 오른쪽에 목적지인 손기정 문화도서관과 손기정기념관이 있다.
손기정기념관 l 그가 남긴 기록
손기정기념관은 선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기념관으로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기념관 앞에는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가 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경기 대회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그의 모교인 양정고에 심었다가 양정고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서 이곳이 손기정 체육공원으로 만들어졌다.
기념관 안에는 두 개의 전시실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기에 앞서 안내데스크 앞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티켓 발권을 해야 한다. 비용은 무료다. 관람 인원을 선택하고 발권을 누르면 티켓이 나온다.
1전시실은 손기정 선수의 우승 전까지의 학교생활, 일대기를 모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기록과 사진을 볼 수 있다. 우승 기념품과 메달, 국제 대화 출전 시 사용했던 캐리어와 여권, 착용했던 의상도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손기정 선수는 마라톤 기록자일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여러 가지 기록들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는 나라 안팎에서 사람들이 보낸 편지와 우표, 메모지까지 수집하고 정리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하고 해방 후 사회 갈등까지 지켜본 생생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마라톤뿐만 아니라 시대상을 대표할 수 있는 궤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2전시실은 베를린 올림픽 당시의 감격을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트랙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마라톤의 기록을 볼 수 있고 영상으로도 그때의 분위기와 현장 스토리가 상영된다. 잠깐 앉아있자니 영상에 빠져들어 현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임시완 주연의 영화 “1947 보스톤” 이다.
손기정 선수의 필체를 본따 만든 폰트 ‘KCC손기정체’도 있다. 한글과 영문, 심볼로 이루어진 이 글꼴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에서 무료 다운로드 가능하다.
손기정기념관
주소: 서울 중구 손기정로 101-4
관람시간: 화~일 10:00-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손기정 문화도서관 l 거실 혹은 캠핑장 분위기의 특색있는 도서관
손기정 문화도서관은 손기정기념관 뒤편에 위치해있다. 중구에서 운영 중인 8개의 도서관 중 한 곳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이곳을 알게 되었을 때, 꼭 가보고 싶었다. 높은 나무 책장 사이마다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있었다.
실제 도서관에 가 보니,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입체적이었다. 도서관은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아담한 붉은색 벽돌 건물이었다. 입구에 서니 동화 속에 나오는 건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1층에는 도서관 종합 안내와 북 큐레이션 공간, 정수기,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라운지가 있었다. 세로로 길게 난 창으로 바깥의 자연이 보였다. 도서관 출입문 정면에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쪽 구석은 계단이고 나머지 공간은 책을 보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층계마다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어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2층에는 적갈색 나무 책장들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었다. 한 쪽에는 1인 좌석과 다인 테이블이 놓여 책을 보거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자리마다 꽉 차 있었다. 반대편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소파와 큰 테이블을 포함해 캠핑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내는 캠핑의자 좌석도 있고 책장과 책장 사이의 공간에 꾸며진 나만의 독서공간도 있었다. 조금 부지런하다면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다.
나는 1인 캠핑 좌석이 비어있어서 그곳을 차지하고 책을 읽었다. 집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보다 집중이 잘 되어 신기했다.
손기정 문화도서관을 이용팁
개인 텀블러 이용
손기정 문화도서관은 공공기관 1회 용품 사용 줄이기의 일환으로 일회용 종이컵이 없다. 개인 텀블러를 지참해 정수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일찍 방문하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맡는다
도서관의 구석구석이 예쁘고 편리하게 잘 구성되어 있어 어느 자리가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없지만 각자 선호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되도록 일찍, 움직이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테이크아웃 음료 반입 가능
일회용 종이컵이 비치되지 않는 것을 다들 알아서인지 카페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았다. 흘리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테이크아웃 음료 반입이 가능하다.
양산 대여 서비스
손기정 문화도서관에서는 양산을 대여하고 있었다. 대여 대장에 연락처를 적고 반납은 7일내에 하면 되는데 편리한 점은 반납을 가까운 동주민센터에 해도 된다는 것이다. 집이 좀 멀더라도 이용 후 동주민센터에 반납하면 된다.
손기정 문화도서관
주소: 서울 중구 손기정로 101-3 (2,5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 도보 12분)
운영시간: 9:00-22:00 / 매주 월요일 휴무
*주차: 손기정 체육공원 공영주차장 1시간 기준 1,800원
*도서관 내 노트북 사용 가능
*개인 텀블러 사용 (환경을 위해 종이컵을 비치하지 않음) / 테이크아웃 음료 반입 가능
청안식탁 l 따뜻한 이북식 닭개장 한 그릇
청안식탁은 이북식 닭개장을 판매하는 맛집으로 식객허영만의백반기행에 소개되기도 한 곳이다. 손기정문화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근처의 맛집을 찾다가 알게 된 곳이다. 방송에 나오기도 했지만 집밥같이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는 방문자들의 댓글이 마음에 들었다. 충정로역 9번 출구와 가까운데 내가 있던 손기정문화도서관에서 도보로 14분 거리였다.
충정로역 2번과 9번 출구 사이 골목길은 먹자골목이었다. 골목길을 따라 식당과 카페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었다. 청안식탁은 그 골목길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었다.
청안식탁 건물은 아랫 부분은 붉은색 벽돌로, 윗부분은 시멘트와 기와로 이루어진 한옥이었다. 옆 골목으로 난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내부 천장은 오래된 건물을 살려 서까래가 그대로 보였다. 1시가 넘어서 한참 붐비는 시간은 피한 것 같았다. 나 외에 두 테이블의 손님이 식사중이었다.
이북식 닭개장을 주문했다. 깍두기와 오징어젓갈, 공기밥이 먼저 나왔다. 깍두기는 직접 담궈 제공하는 것으로 테이블에 비치하지 않고, 직접 덜어서 가져다 준다. 더 필요하면 요청하면 된다.
닭개장이 나왔다. 두께가 두꺼운 사기 그릇에 담겨 옛날 음식을 맛보는 느낌이 들었다. 닭개장과 공깃밥, 깍두기, 오징어 젓갈 이렇게 네 가지를 차려 놓은 것을 보니 소박한 한상처럼 보였다.
국물은 닭고기 육수 맛이 슴슴하게 났다. 테이블에 비치되어있는 후춧가루를 조금 뿌렸다. 풍미가 좋아졌다. 닭개장에는 닭고기 육수에 잘게 찢은 닭고기와 대파가 듬뿍 들어있었다. 어떤 후기는 대파가 많이 들어가서 좀 달다고 했었는데 나는 단맛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담백함이 크게 느껴졌다. 한 끼에 이렇게 많은 양의 파를 먹은적이 있나 싶게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닭고기와 익은 대파를 번갈아 씹을수록 고소했다.
따뜻한 음식이 생각날 때 또 찾아가고 싶은, 맛있고 건강한 한 끼였다.
청안식탁
주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4길 (2,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 도보 2분)
영업시간: 월~금 11:30-21:30 / 브레이크타임 15:00-17:30 / 매주 토,일 휴무
메뉴와 가격: 닭개장 10,000원 / 닭죽 10,000원 / 청안묵 16,000원 / 매콤닭무침 20,000원 외
Lemme coffee l 골목길 작은 휴식처 램미커피
램미커피는 닭개장을 먹은 후, 잠시 쉬기 위해 들렀던 카페다. 청안식탁과 같은 라인에 있어서 1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1층은 주문 카운터와 작은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고, 2층에 좌석과 테라스가 있었다. 요즘 한낮의 테라스는 너무 더워서 아침(오전 7시 30분에 문을 연다)이나 해질녘에나 앉을 수 있을 듯했다. 2층 내부 좌석은 4팀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카페였다.
2층에 먼저 좌석을 확인하고 1층에 내려가 커피 주문을 했다. 한국말은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 직원이 응대를 해주었다. 디카페인 오트라떼를 주문했다. 자리에 있으면 직원이 음료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빵빵하게 켜진 에어컨 아래에 앉아 한낮의 더위를 식혔다. 디카페인 오트밀 커피는 고소한 맛이나 입맛에 잘 맞았다.
램미커피
주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4길 6 (2,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 도보 1분)
영업시간: 월~금 7:30-18:00 / 토,일 휴무
*무선인터넷 / 반려동물 동반 가능 / 디카페인 메뉴 있음